삶 : 나란 존재와 내 안의 우주
뇌에 관한 연구는 비교적 최근에 이루어진 것들입니다. 뇌과학에 관한 이론들은 꾸준히 변화하고 성장하고 있습니다. 20년 전까지만 해도, 뇌 발달은 유년기에 거의 다 완료된다는 것이 정설이었지만, 오늘날에는 인간의 뇌 형성 과정이 25세까지 계속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만큼 미지의 영역이 무궁한 학문입니다.
어찌 되었든 간에 우리의 신체 중에서 뇌만큼 우리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영역도 드뭅니다. 뇌가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은 없겠지만 실제로 뇌가 어떤 활동을 하는지 우리에게 어떻게 영향을 끼치는지 제대로 알기란 현재로선 불가능합니다.
기본적으로 뇌는 지각을 하고 계산 능력이 있으며 무수한 결정을 내리고 상상력까지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꿈과 현실은 뇌세포들의 활동에서 비롯되며 두개골 속의 뇌라는 작은 공간에 광활한 우주라고 할 만큼 내면의 비밀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뇌에 관한 모든 것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해도 『더 브레인』이라는 책을 통해 우리는 뇌에 관한 궁금증과 갈증을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습니다. 뇌에 대해 우리가 궁금해하는 이유는 나라는 존재를 늘 끊임없이 이해하고 싶어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누구인가는 우리가 어떤 경험을 하고 어떤 곳들을 거쳐왔는지에 따라 변화된 뇌의 미시적인 세부 구조에 달려 있습니다. 신경학적으로 우리의 뇌는 끊임없이 자신의 회로를 다시 작성함으로써 변신하고 신경 연결망의 광학적 세부적 패턴들도 끊임없이 변화합니다.
고정 배선을 가지고 태어나는 동물들과는 달리 인간은 어린 뇌를 갖고 태어나 생후 배선됩니다. 미완성인 상태로 태어나 자라면서 세부적인 삶의 경험에 의해 계속해서 변화되는 것입니다. 어린 뇌가 발휘하는 융통성은 새로운 세포의 성장의 개념이 아니라 뇌세포의 연결 방식에 그 비밀이 있습니다. 다시 말해, 뇌세포의 개수는 아이나 어른이나 똑같지만 갓 태어난 아기의 뉴런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지 않고 새로운 연결 곧 매초 무려 200만 개의 시냅스 개수를 형성하며 성장합니다. 그런데 성장하면서 계속해서 연결을 늘려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너무 많은 연결을 가지치기하면서 형성됩니다. 불필요한 요소들을 제거하면서 생존에 필요한 연결들을 이어 나갑니다. 인간 뇌의 생후 배선 전략 때문에 우리가 지내온 과거가 현재 누구인가에 엄청나게 큰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결국 인간은 환경에 대단히 민감한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러 환경적 요인에 반응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접하는 미디어와 우리가 하는 일, 마주하는 수많은 요소가 끊임없이 신경 연결망들을 재편하고 그것들이 우리 자신을 형성합니다.
나란 존재는 매 순간 일어나는 경험에 의해 만들어지는 집합체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내용은 경험에 대한 기억입니다. 우리들은 자신의 기억이 정확하다고 하지만 우리의 기억은 비디오카메라로 정확히 찍어서 보존되는 것이 아닙니다. 현재의 내가 가진 신경 연결망의 지식이 과거에 대한 기억을 변화시킵니다. 현재의 내가 과거를 물들이는 것을 막을 방법은 없습니다. 다시 말해, 같은 사건이라도 개인의 성장에 따라 인생의 각 단계에서 어느 정도 다르게 지각할 가능성이 있다는 말입니다. 저자는 그것을 기억의 오류 가능성이라고 말하고 전혀 다른 기억을 주입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기억하는 과거란 신경망이 재구성한 산물일 뿐입니다.
그러니 어쩌면 끊임없이 변화하는 우리들은 어느 한순간도 같은 기억, 같은 존재로 머물고 있지 않은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실재라는 환상
지금까지 우리의 경험이 우리 자신을 구성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여기에 색깔과 질감, 소리 그리고 냄새와 맛을 포함하는 여러 가지 경험들이 환상일 뿐이며 그것은 우리의 뇌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쇼라고 말한다면 충격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의 뇌 바깥에는 단지 에너지와 물질만 있을 뿐입니다. 인간의 뇌는 수백만 년에 걸쳐 진화하면서 그 에너지와 물질을 풍부한 감각 경험으로 변환하고 그 경험을 세계 안에 있는 대상과 연결짓는 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해 왔습니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얼핏 느끼기에 우리는 감각들을 통해 직접적으로 세계와 연결 짓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순간적으로 이루어지니까요. 하지만 모든 감각 경험은 우리의 뇌에서 일어나는 온갖 활동의 산물일 뿐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뇌 자체는 외부 세계와 연결되어 있지 않다는 점입니다. 두개골이라는 캄캄하고 고요한 방안에 밀봉된 뇌는 외부 세계를 직접 경험한 적이 없습니다. 그저 다양한 감각기관에서 들어오는 신호들을 비교하고 패턴을 감지하면서 나름 최선의 노력을 다해 바깥세상을 추측하는 것일 뿐입니다.
여러 가지 감각 중에 시각을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시각이란 단순히 눈에 들어온 광자들을 뇌의 피질이 손쉽게 해석하는 활동이 아니라 온몸이 참여하는 경험입니다. 시각 활동은 애쓰지 않아도 이루어지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뇌로 들어오는 신호들은 훈련을 거쳐야만 유의미하게 해석될 수 있고, 그 훈련은 신호들을 우리 활동의 감각적 귀결들과 비교하는 작업을 필요로 합니다. 캘리포니아 대학교의 앨리사 브루어 박사는 실험자들에게 세계의 좌우를 뒤바꿔 보게 만드는 프리즘 고글을 쓰고 며칠 동안 생활하게 하는 실험을 했습니다. 연구에 참여한 사람들은 과거의 왼쪽과 새로운 왼쪽, 과거의 오른쪽과 새로운 오른쪽을 구분하는 감각을 터득했습니다. 세계를 표상하는 그들의 공간 지도가 바뀌고 뒤집힌 입력을 능숙하게 처리하는 솜씨를 터득하게 된 것입니다. 실재 세계가 어떻든 간에 뇌는 입력의 세부 사항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단지, 세계 안에서 어떻게 움직이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지 또 필요한 것을 어떻게 확보할지 그것에만 주의를 기울입니다. 이것이 실재라는 환상입니다.
우리의 경험은 뇌의 최종 구성물입니다. 그 구성물은 물론 감각들로부터 유래한 데이터 흐름에 기초를 두지만 거기에 완벽히 의존하지는 않습니다. 모든 감각들을 없애도 우리의 실재가 멈추지 않는다는 점이 그 근거입니다. 외부 세계로부터 완전히 격리된 채 아무 소리도 없고 빛도 없는 환경에서 온갖 이미지를 단지 상상한 것이 아니라 보았다면 믿을 수 있을까요? 실제로 뇌는 눈을 비롯한 감각기관들로부터 정보를 받기 전에도 나름의 실재를 산출합니다. 그 실재를 일컬어 '내부 모형 internal model'이라고 합니다. 시각 정보는 시각 피질로 이동합니다. 하지만 놀라운 사실은 반대 방향으로 가는 연결선, 곧 시각 피질에서 시상으로 가는 연결선은 무려 10배나 많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어느 순간이든 우리의 시각 경험은 눈으로 들어오는 빛보다 머릿속에 이미 있는 것에 더 많이 의지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외부 세계로부터 완전히 격리되어 감각들이 뇌에 새로운 입력을 제공하지 못한다고 해도 내부 모형에 의해 뇌는 계속해서 나름의 광경을 산출해 냅니다. 이것은 꿈에 대한 설명이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매일 밤 꿈으로 풍부하고 완전한 시각 경험을 합니다. 다채로운 꿈을 경험하면서 그 세계가 실재라고 믿습니다.
뇌가 사용하는 외부 세계에 대한 우리의 내부 모형은 우리가 환경을 신속하게 파악하게 할 수 있게 해 주는 도구입니다. 우리의 뇌는 우리의 생존을 위해 최적화되어 있습니다. 내부 모형은 뇌의 과부하를 막기 위한 도구로 에너지 효율에 도움이 됩니다.
결론적으로, 외부 세계는 색깔이 없을뿐더러 소리도 없습니다. 그 세계에 있는 공기의 압축과 팽창이 당신의 귀에 포착되어 전기 신호로 변환될 뿐입니다. 냄새도 실재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뇌 바깥에는 냄새 따위가 없습니다. 공중에 떠도는 분자들이 우리의 콧속 수용기들과 결합하고 뇌에 의해 다양한 냄새로 해석될 뿐입니다.
여기에 평범한 사람들과 다른 방식으로 실재를 지각하는 극소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공감각이란 감각들이 뒤섞인 상태를 말합니다. 공감각의 유형은 다양하며 일부 사람들은 단어에서 맛을 느낍니다. 공감각은 뇌 회로의 미시적인 변화로 우리가 지각하는 실재를 변화시킬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렇듯 우리는 외부 세계를 직접 경험하며 산다고 느끼지만 우리가 상대하는 실재는 궁극적으로 어둠 속에서 전기 화학적 신호로 이루어진 낯선 언어로 작성됩니다. 우리 각자의 뇌는 각기 나름의 진실을 가지고 다른 이야기들을 펼칠 수 있습니다.
실재하는 우리
우리가 어떻게 행동하고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 무엇을 진실로 혹은 거짓으로 믿는지는 뉴런의 부지런한 활동으로 결정됩니다. 수십억개의 전기 신호들이 뉴런의 한쪽 끝에서 반대쪽 끝으로 질주하여 뉴런들 사이의 연결부 수조 개에서 화학적 펄스를 유발합니다. 이런 뉴런의 막대한 노동으로 활동으로 우리의 경험이 결정됩니다.
이런 우리의 뇌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려면 타인이 필요합니다. 정상적인 뇌 활동은 우리 주의의 사회적 연결망에 의존합니다. 우리의 뉴런이 생존하고 번성하려면 타인들의 뉴런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뇌는 끊임없이 사회적 판단을 하고 상호작용이 없으면 뇌는 고통을 겪게 됩니다. 상호작용을 통한 시뮬레이션 능력은 공감의 토대입니다. 우리의 뇌 깊숙이 자리 잡은 뉴런들은 우리의 사정과 타인의 사정을 구분할 줄 모릅니다. 통증을 느끼는 타인을 지켜볼 때 사용되는 뉴런 장치는 스스로 통증을 느낄 때 사용되는 뉴런 장치와 동일하다고 합니다.
인간의 뇌들은 근본적으로 상호작용하도록 설계돼 있습니다. 그렇다면 나와 당신이 함께하는 미래에 우리는 어떤 존재가 될까요? 뇌과학은 우리들을 어디까지 변화시킬 수 있을까요?
뇌는 그 데이터가 어떤 경로로 입력되는지에 연연하지 않습니다. 일반적인 시각 활동도 두개골 내부의 어둠 속으로 흘러들어오는 전기 신호들을 해석하는 것일 뿐이라는 점을 상기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그 신호의 유입은 시신경을 통해 일어나지만 다른 감각들을 통해서 그 신호가 유입되지 못할 이유는 없습니다. 감각 대체가 보여주듯이 뇌는 어떤 데이터든지 들어오는 대로 수용하며 그 데이터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아냅니다. 뇌과학은 우리 감각의 대체, 감각의 증강을 통해 더 나은 몸을 만들어 가는 데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냉각 보존을 통한 불멸을 꿈꾸는 사람들과 함께 뇌 속에 데이터 읽어내는 기술을 통한 디지털 불멸을 꿈꾸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언젠가 나, 장는 나비가 되어 여기저기 날아다니는 꿈을 꾸었다. 나비는 원하는 대로 어디든 날아갔다. 나는 나비로서 내 욕망들을 좇는 것만 의식했지, 사람으로서 나 자신을 의식하지 못했다. 불현듯 꿈에서 깨어보니, 내가 다시 나 자신으로서 누워 있었다. 이제 와 생각하면, 내가 그때 나비 꿈을 꾸었던 사람인지 아니면 지금 사람 꿈을 꾸는 나비인지, 나는 모르겠다."_장자
우리가 경험하는 실재에 대한 고민은 이미 2300년 전, 중국 철학자 장자가 유명한 글로 표현했습니다. 앞으로 다시 2300년이 흐른 후에도 우리는 같은 고민을 하고 있을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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